1. 디지털 유산의 개념과 글로벌 인식의 변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유산은 단순한 온라인 계정이나 파일을 넘어 고인의 삶과 정체성을 담은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 암호화폐, NFT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자산은 개인의 재산뿐 아니라 유족의 추모, 사회적 관계망까지 아우르는 의미를 지닌다. 이에 따라 여러 국가에서는 디지털 유산을 법적으로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존의 상속법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고인의 사생활 보호와 상속인의 권리를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고민은 디지털 유산 법제화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2. 미국의 디지털 유산 법제화: RUFADAA의 도입
미국은 디지털 유산 문제에 가장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특히 여러 주에서 채택한 **통일디지털자산접근법(RUFADAA)**은 상속인이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권리와 절차를 명문화한 대표적 법률이다. 이 법은 고인이 생전에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상속인이 법적 권한을 증명하면 계정 데이터, 콘텐츠, 재산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또한 RUFADAA는 플랫폼 약관과 상속법 간의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 상속인의 권리 보장과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간 균형을 중요하게 다룬다. 이로써 미국에서는 상속인이 법원 명령이나 고인의 유언에 따라 디지털 유산을 합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3. 유럽 주요 국가들의 디지털 유산 정책
유럽은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법 체계 아래 디지털 유산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고인의 사생활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2018년, 고인의 페이스북 계정 접근권을 상속인에게 인정한 판결을 통해 디지털 자산이 상속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 판결은 유럽에서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논의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에 사후 데이터 처리 조항을 도입해 고인의 데이터 삭제, 보관, 이전 등에 대한 생전 지시를 존중하도록 법제화했다. 그러나 유럽 대부분 국가는 미국과 달리 디지털 유산의 상속보다 고인의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최소화 원칙을 우선하며, 상속인이 계정에 접근하는 경우에도 법원이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4. 호주와 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호주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주 정부 단위에서 활발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일부 주는 전자 유언장을 인정하며, 디지털 자산 상속을 위한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호주는 유족이 고인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절차와 조건을 상세히 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일본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까지 디지털 유산에 대한 통합 법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으며, 플랫폼의 약관과 기존 상속법에 의존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최근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아시아 각국도 점차 디지털 상속법 도입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5. 해외 사례가 주는 시사점과 한국의 과제
해외의 다양한 디지털 유산 정책은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국의 RUFADAA처럼 상속인의 권리와 고인의 사생활 보호를 동시에 존중하는 법적 장치, 유럽처럼 생전 고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며 데이터 처리 방식을 규율하는 법제화 사례는 한국이 디지털 유산 법제를 구축할 때 참고할 만하다. 현재 한국은 디지털 유산에 관한 법적 공백으로 인해 상속인이 플랫폼의 일방적 규정에 종속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도 해외 사례를 기반으로 고인의 프라이버시, 상속인의 권리, 공공의 이익이라는 세 요소를 균형 있게 아우르는 디지털 상속 법제화를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법제화뿐 아니라 국민의 디지털 자산 관리 인식을 높이는 교육과 정책적 지원도 함께 추진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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